1993. 10. 26. - 2018. 10. 26.

그날로부터 25년,

참어머님께서 박희정 학군장을 다시 찾으셨습니다.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뜻길을 갈 것이다.

나는 아버님의 뜻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투입할 것이다."

박희정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어머님 대회를 위해서 총학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학사장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우리의 심정을 두드리는 선배가 있습니다. 

초라한 단벌 양복에 초라하지 않은 뜨거운 심정으로 살다

불꽃 되어 우리 곁을 떠나신, 그리움으로 불러보는 박희정 학군장.

1993년 참어머님 대학 순회 강연 당시 우석대에 참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꽃다운 젊음을 내던져 투신하신 박희정 학군장, 

 우리는 그 분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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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학군장 원전 참석 소감문

2018년 10월 26일, 정확히 25년 전 같은 날입니다.

참어머님의 하해와 같은 사랑으로 박희정 학군장의 원전 이장이 잘 치러졌습니다.

비오는 날 모두 함께 울었습니다. 붉게 물든 산하를 보며 당시 학희정 학군장이 흘린 피의 목소리를 기억했습니다. ‘참어머님’을 모시기 위한 길이었기에 박희정 학군장에 대한
그리움은 이 시대의 사생결단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대학원리연구회의 원자들과 공직자들은 이 날 ‘산제물’이 되자고 결의했습니다. 그 결의의 소감문을 보고 올립니다.

​박희정 학군장 추모 영상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이 우리의 생애에 있어 얼마나 크고 귀한 일인가."

박희정

"우리 희정이는 출발도, 과정도 하늘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이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늘 뜻을 위해 갔으니 장하고 기특할 뿐입니다. 다만, 부모먼저 간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 박희정 학군장님의 부모님

10월의 하늘이 되셔서 맑은 혼으로 저희와 함께 하소서.....

원리연구회가 박희정 학군장님을 추모하는 것은 그의 삶과 죽음에 원리연구회의 정체성이 살아 숨쉼을 새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행동으로 통하던 때에 온 몸으로 진리를 보여 주셨던 박희정 학군장님을 바라보면서 지금껏 힘든 현실 앞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는 나약한 모습은 아니었는지, 작은 현실의 이익만을 따라 행동한 모습은 아니었는지 무뎌져만 가는 가슴을 매만져 가며 의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 분의 눈물겨운 삶에 비춰진 저희들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신앙이 거름이 되어 이제 그 때 그 자녀들이 섭리의 일선에서 당신을 신앙의 거울로 삼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1960년 대학가 복귀를 위한 본격적 활동이 시작되면서 원연의 선배들은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오직 뜻과 섭리만을 생각하며 뜨거운 심정과 신앙으로 대학복귀의 불을 지폈다. 한국의 민주화가 수많은 열사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대학가 복귀를 위한 초석 또한 원연 선배님들의 열정으로 이루어졌다.

그 추운 겨울날, 세계일보 깃발과 통일기를 들고 단 하나뿐인 양복을 입고서 덕유산 정상까지 올라가 만세를 불렀던 당신의 당당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학사장님과 함께 했던 두 차례의 겨울 동안 양복하나로 뛰어다니시던 학사장님께 그 흔한 코트 하나 마련해 드리지 못했던 지난 추억이 저희들의 가슴을 아프게 조여옵니다.

후배들에겐 언제나 형같고 친구같았던 학사장님. 그리고 외로운 이웃 노인들에게 친자식같이 효도를 다했던 학사장님.

사회에서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서 미미한 것도 크게 확대해서 말을 하기도 하지만 박희정 학군장님의 삶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위하는 삶과 뜻에 대한 열정, 사명감을가진 당당한 원자, 공직자의 모습이었다.

나약하게 식어가는 우리들의 마음에 불을 당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뜻 대한 우리들의 심정을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당신의 뜻과 심정과 사랑은 통일가에 그리고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는 단 한 사람을 붙들고서도 밤을 지세워 강의하셨던 당신의 열정. 그래서 학생들은 그 열정에 녹아나 기꺼이 수련회에 참석하곤 했었지요.

온 몸에 불이 붙어있는 순간에도 당신은 고통을 나타내기는 커녕 침묵으로 당신의 뜻을 고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쓰러지던 그 순간에도 당신은 정말로 담담한 모습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숨쉬고 활동하는 매 순간순간마다 학사장님의 호흡도 함께 하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학군장님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원연의 메시지는 '참부모님을 믿을 수 있는 대학가 복음화' 였던 것입니다.

말씀의 깨달음이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를 변화시키고 새 것을 낳게 하는 박희정 형님과 같은 원연의 열정을 함께 간직합시다.

그의 행동은 전도를 위한 목적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조건적 사랑과 희생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헌신적 사랑에 감동된 후배들은 그를 친형처럼 따랐고 그의 정신세계를 동경하여 원리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1993년 10월 26일 우석대 학사장 분신. 사탄은 참소하지 말라."

박희정 학군장의 유서

박희정 학군장 약력

출생 1964년 8월 24일 전북 무주

성화 1993년 10월 26일

입교 1986년 ICSA입회, 1990년 입교

축복 1992년 8월 25일 3만 국제합동결혼

학력 무주 중학교, 무주 고등학교, 우석대학교

      일어일문과 졸

주요 활동

1991년  김민수 원자 총학 출마 지원

​           대학순회 전도단 17기 수료

1992년  우석대학교 학사교역장 발령

​           완주군 지역 노인 600명 캠퍼스 잔디광장에 초청 경로잔치

           김봉태 회장 대학순회 강연 우석대 초청강연

1993년  10월 26일 참어머님 40개 대학 강연 우석대에서 성사

ICSA 시절 통학련 등 모든 원리연구회 대회에 200명 이상 학우 동원으로

원리연구회와 ICSA 소개 및 교육

우석대 ICSA 지회장 역임

PD계열 총학과 대자보 논쟁으로 원리연구회와 통일사상 소개

이정문, 김동진과 함께 학내활동 주도

공직 시작 후 매월 1회 만물복귀 활동으로 활동비 및 학생회 지원

세계평화교수협의외 회원확보 활동에 다수 교수 가입시킴.

모든 활동에 탁월한 홍보활동으로 학내 대자보 문화를 바꿔 놓았음.

방중 수련회에 평균 8명 이상의 원자와 초심자를 참석시킴.

그 외 다수의 대학가 활동으로 대학복귀의 첨병으로서의 사명을 다함.

10월 26일

박희정 학군장이 목숨을 걸고 지켜

우석대에 울려 퍼진 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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