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정 학군장님을 추모하며
선문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16학번 한유리
슬프게 내리던 빗방울에 차마 감춰지지 못 한 눈물이 흐르던 날이었습니다. 박희정 학군장님의 성화 25주년을 기리는 자리에 그를 기억하는 선배님들이 모였고, 하나같이 우리 카프 원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박희정 학군장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시지 않을까 생각하며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당시 목숨을 내놓고, 뜨겁게 활동하셨던 선배님들의 간증과도 같은 회고록을 들으며, 한없이 작아지는 지금의 나를, 오늘날의 우리를 반성하게 됩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으셨던 박희정 학군장님의 그 열정과 의지가 저의 심정을 움직이고 다시 그 순수하고 불 같은 열정을 일깨웁니다. 다시 한 번 강하게 결의하여 선배님 걸으신 그 길에 부끄럽지 않은 얼굴이고 싶습니다.
원전식 중 박희정 학군장님 육신의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먼저 간 내 자식이라 아파하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희정이는 참어머님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먼저 갔다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에 참부모님을 향한 진실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박희정 학군장님 만큼 그 부모님도 자식의 심정처럼 참부모님을 지극히 사랑한 것입니다.
무려 25년,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귀한 선배님의 가신 길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희정 학군장님처럼, 그의 어머니처럼, 지금 이 지상에 육신을 쓰고 있는 나로서 참어머님을 몸바쳐 사랑하고 싶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여 그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참어머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그 심정을 가지고, 무엇으로 참어머님께 더 큰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 이불을 뒤척이며 잠 못드는 밤입니다.
이현영회장님 회고담 중 박희정 학군장님이 노래를 못 부르시는데, '못 다핀 꽃 한송이' 라는 노래를 부르셨다는 말에 그 노래를 찾아 들어봤습니다. '먼 곳에 계셨어도 피우리라, 못 다핀 꽃 한송이 피우리라' 라는 구절에서 울컥 눈물이 솟구칩니다. 박희정 학군장님이 남겨두고 가신 꽃 한송이, 저희는 가장 아름답게 피워야 하겠습니다.
영계에서 참아버님과 함께 저희에게 역사하고 계실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이제는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살아서 못 다 피우신 꽃 한송이 활짝 피우시고 저희 옆에서 함께 참어머님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선배님들의 기반, 참부모님의 기반, 그리고 하늘부모님의 사랑을 믿고 당당하게 나가겠습니다.
서울인천 학군장 라훈일
존귀하신 참어머님.
천일국 6년 9월 18일(양력 10월 26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참어머님을 떠올리는 하루였습니다. 1995년 가을, 참어머님 대학가 2차 순회강연 때 저는 참어머님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뵈었습니다. 광운대학교를 갓 입학한 부족한 신입생이었지만 참어머님을 광운대에 모시는 역사적인 순간에 제가 사회를 봤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부족했던 스무살 청년이었기에, 그때 참어머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제 머릿속에는 단상위에 올라 말씀하시는 참어머님의 퉁퉁 부은 다리……. 그 모습이 제 마음 속에 남아있습니다.
행사가 성대히 끝나고, 평소와 같은 신입생으로서 살아가던 중 박희정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게 알면 알수록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움과 참어머님에 대한 죄스러움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만 했던 그 자리에, 저는 아무 준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참 편하게도 참어머님을 모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을이 돌아오고 박희정 학군장님을 추모할때면 항상 마음의 짐을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오늘 김동연 카프&YSP 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춘천원전에서의 원전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눈물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축축한 가을비와 가을 낙엽은 우석대에서 스러진 박희정 학군장의 무엇인가로 느껴졌습니다. 모두가 눈물 흘리며 우리의 심정을 닦아내고 깨끗이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단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참어머님의 축복아래 우리 모두 산제물이 되자는 결의의 눈물이었습니다. 박희정 학군장의 삶과 죽음 자체가 온전히 참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사랑한 것이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실체로 계시는 참어머님을 위해 우리는 산제물이 될 수 있는가를 두고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든 식순자들의 말씀이 심정에 와 닿아 울려 퍼졌습니다. 제 앞에 아픈 다리로 선체 말씀하시던 박희정 학군장 어머니의 말씀이 아직까지도 계속 귀에 아른거립니다. 박희정 학군장이 참어머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양장을 입으셔도 한복을 입으셔도 너무나 아름다운 우리 참어머님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아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우리 모두 참어머님을 위해 살아갑시다 라고 조금은 떨리지만 흔들림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문득, 참어머님께서 최근에 말씀하셨던 ‘안시성’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목숨을 걸고 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굴로 들어가는 백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맡기는 장면입니다. 영화와는 달리 오늘 춘천 원전에서는 그 나이든 어머니가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나이를 잊고 오로지 참어머님을 모시고 우리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하시는 그 말씀에 그러한 심정으로 낳아 키우셨으니 박희정 학군장과 같은 아들이 나오는구나, 생각할 따름입니다.
오늘 눈물 흘린 만큼 2020에 참어머님을 모시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실적을 올리자 라는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박희정 학군장을 알고 있는 모든 식구들이 청년과 같이 짊어지고 과거의 짐을 내려놓아 비전 2020을 향한 질주를 해 나가기로 결의했습니다. 단풍 아름다운 춘천 원전에서 한 결의니만큼 그 색깔은 붉게 물든 가을 빛입니다. 참어머님에 대한 절대적인 효정의 심정으로 맺은 결의입니다. 이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축복해주심에 부족한 소자는 감사를 올리며 전진 전진 전진하겠습니다.
서울인천학군장 라훈일 올림
대구학사 장수원
오늘 원전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스스로 너무나도 준비 없이 찾아간 자리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박희정 학군장님이 어떤 선배였는지, 내가 왜 이 분을 기억해야하는지, 저는 아무 것도 모른 채로 무리 지어 가는 곳에 따라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선배가 있음을 알았고, 내가 그의 어떤 모습을 상속받아가겠다는 깨달음이 있었으니 큰 감사로 맺는 하루입니다.
어쩌면 그저 몇몇의 기억에만 남아 조용히 잊혔을지도 모르는 의인을 만났습니다. 이 내용을 저만 알고 있을 수 없어, 모든 동기들과 선후배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희정 학군장님의 충효의 심정과, 그 숭고한 결단을, 처절한 심정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원자들만 알기에는 너무나 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더 많은 원자들이 찾아오지 못했다는 것에 연신 아쉬움만 남습니다. 그리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기억하지 못해 죄송했다고, 선배님의 그 눈물을 이어가지 못하고 철부지와 같이 살아온, 부모님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그 모습 죄송했다고 속삭이듯이 기도드렸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여기 서있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의인들의 목숨을 밟고 서있는 것일까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묻혀버린 수많은 빛들을 우리는 얼마나 더 꺼내어 보고 기려야 할까요. 지금 제 위치, 이 책임이 정말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이, 그냥 말로써가 아니라 그 희생들 위에 세워지며 더욱 크고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청년들이 일어나 참부모님을 모시고 힘차게 전진해야 할 시기에 크고 든든한 선배 한 분을 만나 마음에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오늘을 주시고 다시금 그들을 잊지 않고 참부모님을 바로 모실 수 있는 기반을 일깨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때의 그 뜨거운 심정,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부모님에 대한 애달픈 사랑을 이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의 뜻이 모든 후배들에게, 동기들에게 전해져 우리의 책임과 순수한 그 효정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 큰 소리로 외칠 것입니다. 원전식을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이 심정을 키우는 교육의 장으로 이틀이고 사흘이고 우리는 이 희생의 화두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지금 옆에 계시는 모든 식구님들과 한 마음 한 뜻으로 손을 잡고 참부모님을 모셔 세상을 복귀하는 용사들이 되겠습니다.
전남학사 김정은
작년에 처음 박희정 학군장님이라는 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항상 어떤 분이실까 하는 궁금함과, 살아계신다면 그런 분을 한 번 만나뵙고싶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지내던 중 박희정 학군장님의 원전식 광고를 듣고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런 분을 추모하는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것이, 그러한 인연을 대학원리연구회라는 이름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지 원전식에 참석하러 가는 도중에도 떨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 박희정 학군장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원리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 없었을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여러 선배님들의 회고담을 들으며 당시 그 간절함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답답하고, 또 상상 이상으로 애절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제 귓가에 들리는 듯 했습니다.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이었지만 그 마음이 애달파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저는 요즘 통일가의 2세로서 대학원리연구회의 원자로서 대한민국의 청년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또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학군장님을 기억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이든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루고 싶은 일을 찾아나가야겠다! 라는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참 기쁜 날입니다. 초라한 신화공원묘역에 머물던 박희정 학군장님, 25년만에 어머님 품 같은 춘천 원전에 안착하셨습니다. 참어머님을 그렇게도 지극히 사랑하셨다는데, 오늘은 얼마나 기쁘고 설레셨을까요? 제 마음도 기쁘고 뿌듯함에 오늘 연신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참어머님, 정말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우리 귀한 선배를 이렇게 잊지 않으시고 챙겨주시어 저희들에게 심정의 교육을 해주시니 이 아름다운 가을날에 또 한 번 참부모님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갑니다.
사랑합니다 참부모님!
선문대학교 원자
저는 박희정 학군장님을 잘 몰랐습니다. 이름도, 어떠한 분인지도 모른 체 어렴풋이, 참어머님의 대학가 순회 강연을 위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쳤다 정도만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문대 개강총회에 김동연 회장님이 오셔서, 처음 제 귀에 박희정 학군장님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박혔습니다. 회장님께서 박희정 학군장님께 육신이 있다면 또 목숨 바쳐서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하시겠는데, 육신이 없는 그 한이 얼마나 크겠냐며 말씀하실 때 저는 뒤에서 숨죽여 오열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와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의 한스러움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박희정 학군장님의 성함이나 그 이야기를 들으면 계속 울컥하고 눈시울 붉히게 됩니다. 원래 잘 울지 않는 저이지만, 박희정 학군장님의 이름 앞에서는 하염없이 작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감정으로 무슨 이유로 슬프다, 한스럽다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 감정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김동연 회장님의 사회를 시작으로 박희정 학군장님의 어머님이 나오셔서 말하는 것까지 다 슬프고 한스럽고 내가 작아지고, 간절해졌고 그래서 계속 눈물 닦기 바빴습니다. 마치 내리는 비가 학군장님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가 오늘 흘린 그 눈물은 박희정 학군장님의 그 간절한 마음에 공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체가 없어 참부모를 간절히 바랬듯이, 육신이 없는 박희정 학군장님께서 제 몸을 빌려 하염없이 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든 시기였는데, 원전식을 통해 참부모님의 사랑과 선배님의 사랑, 후배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참부모님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여러 선배님의 회고사를 통해서 눈 앞에 그려지듯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2018년 이 시기에 박희정 학군장님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크고 무겁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참부모님을 내 삶에 모실 수 있고, 뜻길을 위해 헌신하며 갈 수 있는 시대적 축복 속에 있습니다. 박희정 학군장님 어머님의 말씀처럼 긴가민가 하고 있는 젊은 2,3세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다시 똑바로 나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 이 시대에 박희정 학군장님이 살아 계셨다면 참부모님을 세상 앞에 자신있게 모실 수 있어서, 뜻을 위해 마음껏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서 누구보다 기쁘고 행복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지 못해서 얼마나 슬프실까요,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후배가 있다면 얼마나 그 옆에 함께하고 싶을까요! 다시 한번 선배들의 노고를 깨달았습니다. 2세들은 참부모님과, 그 옆에 함께한 1세 선배님들의 피, 땀, 눈물의 결실체 였습니다......
이제 그 심정을 상속받고 발전해야 될 때입니다.
저희가 그 바통을 이어받겠습니다. 한없이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