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 10. 26. - 2023. 10. 26.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뜻길을 갈 것이다.
나는 아버님의 뜻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투입할 것이다."
박희정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어머님 대회를 위해서 총학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학사장님.
어느덧 30년,
어김없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잊지 말아야 할 선배님이 계십니다.
초라한 단벌 양복에 초라하지 않은 뜨거운 심정으로 살다
불꽃 되어 우리 곁을 떠나신, 그리움으로 불러보는 박희정 학군장.
1993년 참어머님 대학 순회 강연 당시 우석대에 참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꽃다운 젊음을 내던져 투신하신 박희정 학군장,
우리는 그 분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박희정 학군장 추모 영상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이 우리의 생애에 있어 얼마나 크고 귀한 일인가."
박희정
"우리 희정이는 출발도, 과정도 하늘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이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늘 뜻을 위해 갔으니 장하고 기특할 뿐입니다. 다만, 부모먼저 간 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 박희정 학군장님의 부모님
10월의 하늘이 되셔서 맑은 혼으로 저희와 함께 하소서.....
원리연구회가 박희정 학군장님을 추모하는 것은 그의 삶과 죽음에 원리연구회의 정체성이 살아 숨쉼을 새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행동으로 통하던 때에 온 몸으로 진리를 보여 주셨던 박희정 학군장님을 바라보면서 지금껏 힘든 현실 앞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리는 나약한 모습은 아니었는지, 작은 현실의 이익만을 따라 행동한 모습은 아니었는지 무뎌져만 가는 가슴을 매만져 가며 의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 분의 눈물겨운 삶에 비춰진 저희들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신앙이 거름이 되어 이제 그 때 그 자녀들이 섭리의 일선에서 당신을 신앙의 거울로 삼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1960년 대학가 복귀를 위한 본격적 활동이 시작되면서 원연의 선배들은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오직 뜻과 섭리만을 생각하며 뜨거운 심정과 신앙으로 대학복귀의 불을 지폈다. 한국의 민주화가 수많은 열사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대학가 복귀를 위한 초석 또한 원연 선배님들의 열정으로 이루어졌다.
그 추운 겨울날, 세계일보 깃발과 통일기를 들고 단 하나뿐인 양복을 입고서 덕유산 정상까지 올라가 만세를 불렀던 당신의 당당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학사장님과 함께 했던 두 차례의 겨울 동안 양복하나로 뛰어다니시던 학사장님께 그 흔한 코트 하나 마련해 드리지 못했던 지난 추억이 저희들의 가 슴을 아프게 조여옵니다.
후배들에겐 언제나 형같고 친구같았던 학사장님. 그리고 외로운 이웃 노인들에게 친자식같이 효도를 다했던 학사장님.
사회에서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서 미미한 것도 크게 확대해서 말을 하기도 하지만 박희정 학군장님의 삶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위하는 삶과 뜻에 대한 열정, 사명감을가진 당당한 원자, 공직자의 모습이었다.
나약 하게 식어가는 우리들의 마음에 불을 당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뜻 대한 우리들의 심정을 부활시켜 주셨습니다.
당신의 뜻과 심정과 사랑은 통일가에 그리고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말씀을 전할 때는 단 한 사람을 붙들고서도 밤을 지세워 강의하셨던 당신의 열정. 그래서 학생들은 그 열정에 녹아나 기꺼이 수련회에 참석하곤 했었지요.